※ WARNING ※
<그녀가 공작저로 가야 했던 사정>의 후반부 반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 2018년 8월 1일 작성글 백업본
“넌 어때, 그 몸으로 행복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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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리아나가 총을 잘 쏘는 설정에 대해.
걸어다닐 수 있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사냥터에 다닌 사냥 계의 여왕. 제아무리 작고 어려운 과녁이라도 쏘면 무조건 맞추는 백발백중의 명사수라는 점은 일견 굉장한 주인공 버프로 느껴지는데 멋있으니 되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은 이 명사수 버프의 원 주인이 현재 레리아나에게 빙의한 박은하가 아니라, 바로 ‘원래의 레리아나 맥밀런’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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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레리아나 맥밀런은 원래 은하가 읽었던 소설에선 초반에 죽는 엑스트라에 불과한데 왜 이렇게까지 과한 설정이 붙어 있는 건가요? 이거 빙의물 여주 띄워준답시고 ‘빙의물 속 원작’ 설정을 너무 대충 하는 거 아닌가요?!
A. 주인공이고 엑스트라고 그런 거 없습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이곳은 소설 속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이것은 조연빙의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뭐 굳이 따지자면 글 전개는 조연빙의물의 기본 틀을 충실히 따르고 있고, 빙의물 트렌드가 5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현재에 와선 이런 종류의 반전도 흔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어쨌든 뒤에 가서 밝혀지는 세계관을 알고 나면 이게 실은 ‘조연’도 아니고 ‘빙의물’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구석이 있다. 빙의를 한 게 맞긴 맞는데, 그 빙의가 그 빙의가 아니라고 해야 하나. 남의 몸 남의 인생에 난입해서 대신 사는 일반적인 빙의물이라 보기엔 좀 묘하다.
Q. 그럼 주인공과 엑스트라 문제는 그렇다 치고, 내성적이고 소심한 레리아나 맥밀런의 본래 캐릭터성과 사이다 여주용 명사수 설정은 언발란스하지 않나?
A. 그 점이야말로 오히려 레리아나 맥밀런 캐릭터 해석의 핵심이 아닐까. 은하(현재의 레리아나)가 읽은 책 속의 레리아나는 극 초반부에 너무 일찍 죽어버렸기 때문에, 은하가 가진 정보─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는 지극히 단편적이고 표면적인 면모에 국한되어 있었다.
레리아나 맥밀런이 본래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관한 힌트들이 담긴 과거 시점을 한번 살펴보자.
책은 좋다. 책 속에서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동경하는 주인공이. 책을 덮은 레리아나 맥밀런은 거울에 비친 제 모습과 책을 번갈아 보았다. 활발하고 능동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주인공의 일러스트가 손안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주인공. 레리아나 맥밀런은 나직이 그 단어를 읊조렸다. 그녀는 문득 자신이 제 인생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것은 무척이나 슬프고, 화가 나는 일이었다. / 연재본 92화, 단행본 3권 |
여기까지 읽었을 때만 해도 레리아나 맥밀런에게 가진 감정은 동정에 가까웠다.
타고나길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 낯을 심하게 가리고, 자신의 의사를 당당하게 표현할 줄 모른다. 생각이 많다는 말이 칭찬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을 때 그녀의 마음에 스쳤을 슬픔에는 언뜻 공감도 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활발하고 능동적인 소설 주인공에게 동경 섞인 이입을 하는 건 극내향성 아싸 웹소설 독자인 너 나 우리 모두 이해할 수 있잖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슬픔이 무고한 현실 사람을 해하는 반사회적 행위로 이어져서는 안 되지만요…. 본래의 레리아나 맥밀런이 왜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는지에 대한 심정적인 이해는 가고도 남았다는 소리다.
내가 곧 죽을 운명이라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거지. 발버둥 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살고자 하는 욕구만큼 강한 추동도 없다. 생존 문제가 된 이상 다소 극단적인 수─그러니까 친구와 자신의 몸을 뒤바꾸는 주술 같은 것─를 썼더라도 감형(?)의 여지가 있다는 말.
그러나 불과 2화 뒤 나온 과거의 조각에서,
“약혼이 무산됐어? 왜?” 카페 테라스에 앉은 베아트리스 트란쳇이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어찌나 듣기 싫은지. 눈을 피한 레리아나 맥밀런은 광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냥. 나도 잘은 몰라.” 조그맣게 나온 목소리에 베아트리스 트란쳇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위로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중략) 그녀의 위로를 가만히 듣고 있던 레리아나 맥밀런이 문득 입을 열었다. “고아원, 늦지 않았어? 애들이 기다릴 텐데.” “맞다, 늦었어. 그럼 나 먼저 가볼게.”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베아트리스 트란쳇이 먼저 자리를 떴다. 베아트리스라면 괜찮았을까. / 연재본 94화, 단행본 3권 |
…이거 쎄한데.
뭐지 이 열등감. 이 자격지심.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마이너스 감정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레리아나의 ‘감정’이 아닌 그 감정을 느끼는(혹은 촉발하는) ‘대상 선정’에 있다.
베아트리스는 명백히 레리아나보다 약자다.
그녀에겐 레리아나 맥밀런이 가진 부유한 환경도 화목한 가정도 없다. 정황상 부모님이 안 계신 베아트리스는 고아원에서 자랐고, 나이가 찬 뒤에는 그곳에서 선생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으며, 공부에 재능이 있었는지 장학금을 받아 신학교로 운 좋게 유학을 떠날 수 있었던, 딱 그 정도의 처지.
그런데 왕국에서 손꼽히는 신흥 부호이자 귀족 가문의 여식으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온갖 고등교육을 받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딸의 마음과 의견부터 생각하고 배려하는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듬뿍 사랑 받고 자란 레리아나가, 베아트리스의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을 보며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느낀다?
이… 이 철없는 것아…. 종부세 내는 부모님 밑에서 용돈 받고 자란 놈이 알바하며 학자금 대출 갚기 바쁜 동기 앞에서 자긴 국가장학금 못 받는다고 징징대는 거 아니냐 지금
어느모로 보나 배부른 투정이지만… 어쨌든 인간의 감정이라는 게 원래 자기중심적이고 편협하며 비합리적인 것이니까. 물질적 · 정서적 풍요도와는 별개로 타인이 가진 성품이나 인간관계(심지어 그것이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형태라면)를 질투하고 거기에 열등감을 느끼는 건 이기적일지언정 이상한 일은 아니긴 하지….
하지만,
베아트리스는 슬며시 웃고는 깃을 가다듬었다. 살롱에 모인 이들은 모두 왕국의 실세라 불릴 만한 이들의 인척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임에서도 자신은 눈여겨볼 만한 인물이었다. 자신을 경계하고 탐색하는 시선과 몸짓을 느끼면서도, 주목받는 것이 못내 만족스러웠다. / 연재본 96화, 단행본 3권 |
죽은 친구 가죽 뒤집어쓰고 이러는 건 진짜 아니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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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스’가 된 후 고양감을 느끼며 자신이 주목 받는 상황에 도취한 모습을 보건대, 이건 스스로의 선택을 정당화하고 죄책감에서 도망치기 위한 방어기제 수준을 넘어섰다. 본능적인 생존 욕구만으로는 그녀가 보이는 만족감이 설명이 안 됨.
그리고 여기서 과거 레리아나의 독백을 다시 읽으면…
그녀는 문득 자신이 제 인생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것은 무척이나 슬프고, 화가 나는 일이었다. / 연재본 92화, 단행본 3권 |
이때부터 이미 그녀의 감정─슬픔과 분노─의 깊이와 방향이 내가 생각했던 정상 범주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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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자기애와 자기혐오가 뒤섞인 인정 욕구.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분노.
그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본래의 레리아나 맥밀런, 줄여서 ‘구 레리아나’는 내성적인 성격과는 별개로 인정 욕구가 상당히 강한 사람이었음. 이게 건강한 자존감의 밑거름이 되는 수준을 넘어 반사회적인 방향으로 치닫게 된 원인이 선천적인 성향인지 후천적인 환경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레리아나 맥밀런의 주변 환경이 그녀의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했던 것은 확실하다.
그녀의 가문은 귀족이었지만 작위는 고작 남작(공후백자남 중 가장 하위)이었다. 가문의 부(富)도 세습을 통한 것이 아닌, 석유 사업으로 떼돈을 벌어 졸부 소리를 듣는 집안. 다시 말해,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만 서 있어도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 상냥하게 말을 걸고 머리를 조아리는 수준’은 못 된다는 얘기다. 그러긴커녕 혼담을 주고받은 집안의 자제가 그녀를 두고 ‘따로 정부를 불러도 말 한마디 못할 것 같아서 좋다’며 뒤에서 낄낄대는 형편이니까.
소설 속 주인공처럼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데 먼저 나를 좋아한다며 다가와 주는 사람은 없고. 그렇다고 해서 먼저 나설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있었더니 주변은 자기를 비웃는 사람들로만 가득한 것 같고. 인정 욕구는 누구보다 강한데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은 터무니없이 초라하게 느껴져서.
그래서 택한 게 사냥 아니었을까.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표출할 줄 모른다. 제게 모욕을 준 상대방에게 반박하기는커녕, 딸의 말을 귀담아들을 준비가 되어 있던 부모님에게조차 상담 한마디 안 했다. 해소되지 못한 채 내부에 조용히 누적되던 불만은 분노로 변질되고, 결국 그 분노는 ‘내성적이고 소심하며 시키는 것만 하는’ 레리아나 맥밀런이 꾸준히 사냥터를 찾는 동력으로 작용했겠지.
사냥은 기본적으로 살생이다. 그녀는 내부에 응어리진 분노를 풀 대상이 필요했다.
아버지가 사냥을 좋아하시니 어릴 적부터 사격을 배울 기회가 주어졌고. 배워보니 마침 재능도 있었고. 사냥감을 향해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기는 그 순간만큼은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들을 잊은 채, 누군가의 생명이 제 손에 달린 느낌을 만끽할 수 있었으니. 사냥은 구 레리아나에게 적절한 감정 배출구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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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총구가 가리키는 곳이 토끼나 사슴이 아니라 결국 인간이었다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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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사냥을 단순한 취미가 아닌 분노 배출구로 이용하고 있었으니, 시작부터 이미 예견된 결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구 레리아나가 진정으로 쏘고 싶었던 건 한낱 동물이 아닌 인간이었을 거다.
정상적인(사회적으로 합의된) 방법으로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고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행위의 비윤리성을 지적하기 전에, 어쨌든 그녀가 느꼈을 모욕감과 분노 그 자체에는 공감할 수 있지 않나 물을 수도 있는데. 아까도 말했듯이 여기서 문제는 감정이 아닌 대상 선정이다.
그녀는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분노하지 않는다.
아니 백번 양보해서 누굴 죽여야겠다면 자신을 모욕한 전 약혼남이나 처음부터 살인 계획을 짜고 자신을 기만했던 프렌치 브룩스부터 쏴 죽여야지. 정작 진짜 가해자들은 높으신 분들이라 못 건드리겠고, 만만한 건 자신보다 신분도 낮고 가족도 없는 친구였다니.
그린 듯한 굴절 분노다. ‘운명’에 대해 알기 전부터 이미 그녀의 비뚤어진 인정 욕구와 분노는 위가 아닌 아래를 겨누고 있었고, 검은 신녀가 그럴듯한 말로 꾀자마자 그렇게 내성적이었다던 사람이 그토록 극단적인 선택지를 냉큼 받아들인다.
그 선택으로 인해 부모님은 딸을 잃고, 아버지의 사업마저 가해자인 프렌치 브룩스의 손에 넘어갈 것을 알았는데도 거기에 대해선 놀랍도록 불만이 없다. 세상을 떠난 친구의 영혼에 대한 애틋함도, 본인 몸에 들어간 아무 죄 없는 영혼을 죽여야 한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없다. 그저 하루빨리 예정대로 ‘레리아나 맥밀런’은 죽고 자신은 ‘베아트리스’로서 기득권에 편입되어 편하게 살고 싶다니, 이건 너무 비겁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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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바꾸고 싶으니까요.” / 연재본 73화, 단행본 2권 |
운명을 바꾸고 싶었던 건 두 명의 레리아나 모두 마찬가지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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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두 사람이 맞는 엔딩에 차이를 만든 건 기본적인 모럴이다.
은하(현재의 레리아나)가 만약 미래에 대한 정보 값이 전혀 없는 상태로 구 레리아나와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녀는 과연 베아트리스의 몸을 탈취한 뒤 새로 오는 레리아나를 죽인다는 선택을 했을까? 장담컨대 못한다.
“지금 잡히면 아마 최대 종신형? 나도 귀족이니 적어도 사형대에 오르진 않을 거야. ‘이래 죽나, 저래 죽나’인 일이 아니라고. 지금 날 죽이면 말이야, 아가씨. 당신은 저 살인귀랑 다르게 날 평생 기억하게 될 거야. 덧붙여 우리 어머니도.” 레리아나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분하지만 그의 말이 맞았다. 홧김에 죽이라고 해봤자, 매일 저 눈물점만 떠올리면 잠을 설칠, 평생 뒤숭숭한 일로 남으리라. 자신이 그에게 써먹었던 죄책감을 건드리는 수는 저치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너무나 잘 먹혀들었다. / 연재본 17화, 단행본 1권 |
그와중에 랭스턴 입 터는 솜씨
자신을 납치한 뒤 죽이려고 한 범죄자이며, 즉결처분이 가능한 상황임에도 현재의 레리아나는 그를 죽이라고 명령하지 못한다. 다급한 상황에서 정당방위로 맞서다 벌어진 우발적 사고라면 모를까, 더 이상 저항이 불가능한 상대를 죽이라고 직접 명령하는 건 그 대상이 흉악 범죄자라 해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비록 댓글창에서는 고구마라고 욕하는 사이다무새들도 있었지만 이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애초에 남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어떤 이유를 대건 무거울 수밖에 없지. 심지어 직접 죽이긴커녕, 누군가가 죽는 걸 알고도 못 막는 것만으로도 죄의식과 책임감을 느끼는 게 인간 아닌가.
(비비안 파트에서도 언급할 테지만 그 철없고 자기중심적인 비비안 샤말조차 살인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구 레리아나의 선택을 21세기 현대 민주시민과 왕정 계급 사회 국민의 가치관 차이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랭스턴의 경우에는 생포에 성공해 살인까지 갈 필요가 없었지만 불행히도 레리아나 앞에 놓인 운명은 순탄하지 않아서. 결국 두 번이나 자기 손으로 직접 누군가를 죽이게 되는데,
탕, 탕. 총소리가 두 번 더 이어졌다. 힘이 풀린 손에서 거대한 도끼가 옆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는 믿을 수 없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려 했지만, 고개를 돌리는 순간 온몸의 힘이 빠지며 몸이 허물어졌다. 그는 끝내 뒤를 확인할 수 없었다.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레리아나가 총구를 내렸다. 노아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레리아나?” “네.” 단답한 레리아나가 다시 시선을 내렸다. 죽었나. 거구의 사내는 꿈틀거리나 싶더니 잠잠해졌다. 그가 완전히 죽었는지 확인하듯 가만히 바라보던 레리아나가 차분히 숨을 가다듬었다. / 연재본 81화, 단행본 2권 |
“그래서, 죽였어요.” 끝맛이 나쁜 술을 마시고 난 것처럼 입이 텁텁했다. 노아가 점차 표정을 일그러트리는 레리아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턱을 두 손으로 붙잡아 올렸다. “잘했어.” 레리아나가 입을 꾹 다물었다가 답했다. “……네.” / 연재본 104화, 단행본 3권 |
('괜찮아'가 아니라 '잘했어'라고 해주는 공작님 베리굳)
두 번 다 명백한 정당방위였다. 한 번은 노아를 살리기 위해, 다른 한 번은 자기 자신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한 살인.
경쾌한 분위기의 작품인지라 레리아나가 느끼는 공포나 트라우마에 관해선 직접적인 서술을 생략하는 경향이 있지만(죽음의 위기에서 겨우 벗어난 당시 레리아나가 멀쩡한 듯 서술되었지만, 이후 그녀가 일주일 넘게 방에만 틀어박혀 신문 낱말퍼즐을 푸는 데에 강박적으로 골몰했다는 등 그녀의 심리 상태를 유추할 수 있는 행동 묘사가 주어지는 식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자신이 행한 살인의 무게를 느끼고 있다는 건 충분히 드러나는 본문이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중요한 건, 현 레리아나가 그 무게를 남에게 전가하지 않고 스스로 감당하고자 했다는 것.
사실 레리아나의 옆에는 이런 험한 일을 대신 수행해 줄 사람이 있잖아요? 심지어 베아트리스(구 레리아나)를 처형하던 현장에서 목표 옆에 더 가까이 서 있던 건 노아였고, 노아는 오랜 세월 전쟁과 정치 암투 속에서 피를 보며 살아 온 지라 이런 일이 트라우마로 남지도 않을 사람임.
그러나 레리아나는 자신의 문제로 남의 손에 피를 묻힐 생각이 없었고, 이 기억이 설령 자신을 영영 괴롭힐 악몽으로 남게 된다 하더라도 방아쇠를 당기는 건 자신이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던 거다.
구 레리아나가 굴절 분노로 총구를 아래로 겨누어 놓고도 정작 책임은 회피하고 싶어서, 방아쇠를 당기는 일만큼은 다른 사람이 하도록 만들기 위해 갖은 수를 쓰던 것과는 정말 대비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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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구 레리아나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어떤 리스크도 감수하지 않은 채로 그저 기득권의 인생에 편입되고 싶었던 거다.
씁쓸한 건, 그렇게 ‘행복해질 운명을 타고난 베아트리스’의 가죽으로 갈아타고 나서 구 레리아나가 시종일관 보이는 적극성이다. 제 의견 한 번 제대로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던 아이가 이제 자기는 ‘잘 될 운명’이라는 확신 하나에 180도 다른 사람이 되어 블레이크 공작에게 접근하고, 당당히 그의 수양딸이 되고, 비비안 샤말의 친구 행세를 하고, 쏟아지는 시선에도 주눅 들지 않는다.
그 정도의 지력과 눈치, 행동력을 ‘레리아나 맥밀런’으로서 살아남는 데에 썼다면 충분히 행복해지고도 남았을 정도다. 아니, 밑천 하나 없는 베아트리스 트란쳇 신분으로도 자그마치 블레이크 공작에게 접근해 그의 약한 면모를 파고들어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진짜 이 능력치를 왜… (이마짚)
실패 시의 리스크가 존재하는 건 베아트리스가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운명’이라는 두 글자가 그녀에겐 대단한 안전망이자 면벌부로 느껴졌던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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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구 레리아나 씨, 이 나라 권력의 중심부에 계신 공작님도 사람 그렇게 막 죽이진 않아요….
작중 노아가 직접 죽였거나 죽이라고 명령 내린 일은,
- 프렌치 브룩스와 제이크 랭스턴 (레리아나 납치 및 살인미수)
- 베넷 백작 (시아트리히 암살 미수, 레리아나 살인미수)
이렇게 총 3명이고.
노아가 상대를 죽이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경우는,
- 비비안 샤말 (레리아나 살인미수)
- 베아트리스 블레이크 (레리아나 살인교사 여러 건, 비비안 살해)
이렇게 2명인데,
보다시피 다들 일단 레리아나를 건드린데다 죄질이 기본 살인미수 이상인 중범죄자들이다. 나중에 노아 윈나이트에 대한 단상에서 따로 또 떠들어 대겠지만, 공작님이 음흉한 정치인 같이 굴어서 그렇지 의외로 선빵은 안 칩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라,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노아도 안 물어요. 베넷 백작 처리하면서도 그의 무고한 아내는 연좌제로 고통받지 않도록 타국으로 도피할 수 있게 해준 사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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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운명에 편승하고자 했던 베아트리스(구 레리아나)는 패배하고, 운명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던 레리아나가 오히려 해피엔딩을 거머쥔 아이러니.
애초에 베아트리스로 내정되었던 영혼은 은하(현 레리아나)라는 점에서, 큰 틀로 보면 모든 것이 본래의 ‘운명’대로 흘러갔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 결과가 철저히 운명─신의 선택─에 의해 통제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
“여신? 그년은 그냥 질 나쁜 극작가야.” (중략) “쓰고 싶은 대로 각본을 쓰고, 영혼에 육신이라는 배역을 줘서 그 극본을 재현하게 하는 거라고. 제가 보고 싶은 장면을 보기 위해서.” / 연재본 92화, 단행본 3권 |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한 그녀는 첫 만남에도 유려한 말솜씨를 자랑했다. (중략) “그래서 여기까지는 왜 오신 거예요?” “캐스팅을 하러 왔지.” “캐스팅이요?” “이제 곧 빈자리가 생기는데, 알맞은 영혼이 잘 안 보여서 말이야.” / 연재본 103화, 단행본 3권 |
“지금의 레리아나는 당신이 보고 싶어 하시던 장면이 아니잖습니까. 베아트리스가 되길 포기했으니까.” / 연재본 107화, 단행본 3권 |
여신이 본래 예정했던 각본은 엉망이 되었다.
처음부터 ‘행복한 결말을 맞기로 예정된 영혼’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칼뱅의 예정론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곧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인용한 부분에도 나와 있듯이 여신은 자신이 쓴 배역에 알맞은 영혼을 ‘찾기 위해’ 애쓰는데, 이는 곧 영혼이 여신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멋대로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란 걸 의미한다.
결국 제게 배당될 배역조차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 셈. 그리고 여신은 ‘비뚤어진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무고한 사람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영혼’은 베아트리스가 아니라 레리아나 역할이 더 맞을 거라 판단한 거겠지. 검은 신녀의 농간으로 인해 배역이 뒤바뀌고도 영혼이 제 결말을 찾아간 걸 보면, 여신의 캐스팅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긴 힘들 것 같다ㅋㅋ
그리고 신이고 배역이고 다 떠나서 남의 삶(혹은 남이 ‘만들어준’ 삶)에 편승하고자 하는 사람이 어떻게 ‘주인공’이 되겠어요. 설령 ‘베아트리스’로서 생존에 성공했어도 남들의 호감과 관심을 갈구하고 거기에 끌려다니는 태도로는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몇번 실패해도 그녀를 감싸줄 안전망은 갈아탄 운명이 아닌, 본래의 레리아나에게 허락되었던 가정과 부에 있었는데. 네가 한때 손에 쥐고 있던, 누구나 부러워 할 그 카드들이 아깝구나 레리아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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